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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멀리즘] 비움의 미학
    [끄적끄적 생각노트] 2021. 1. 13. 00:43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남기고자 늦은 시간 급히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다. 밤 열두 시,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뚫고 수많은 물건들을 재활용하고 난 후의 개운함과 후련함, 속 시원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미니멀리즘을 접하다]

    처음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접한 건 집 앞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서였다. 책의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욕구와 필요를 구분할 것. 물건을 들일 때는 신중하게, 물건을 버릴 때는 과감하게. 그 당시에는 너무도 당연한 내용을 책 한 권에 걸쳐 장황하게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프로 여행러였기 때문이다.


    배낭이라는 한정적 공간을 규모 있게 꾸리다 보면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 7kg 남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필요하면 사지 뭐'라는 마음가짐으로 떠났어도 막상 지내다 보면 당장 먹을 음식 빼고는 별로 필요한 물건이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달까. 그렇지만 여행과 실제의 삶은 구분되어있고, 현실 세계의 삶을 배낭여행처럼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제, 1976년, 알루미늄 설치, 뉴욕 디아 비콘 미술관

    [이사. 필요에 의한 정리]

    그러다가 이사를 맞이하였다. 두 집 살림 덕에 모든 물건이 두 개씩 있었다. 스킨로션도 두 세트, 드라이기, 요가매트, 폼롤러도 각 두 개씩, 옷도 노트북도 인형도 쿠션도 소파도... 게다가 책은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었다. 각종 여행에서 모아 온 기념품과 엽서, 수많은 사진들도 한몫했다. 받은 편지들도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정리를 하다가 멈추고 추억여행을 만삼천이백오십번정도 떠난 후에야 이렇게 모든 걸 끌어안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옷은 왜 이렇게 많은지. 엄청난 패션 감각을 뽐내는 멋쟁이도 아니건만 선글라스와 벨트, 스카프, 목도리, 모자 등 패션 소품만으로도 금방 박스를 채웠다. 고이 모시는 가방과 힘들 때마다 사들인 원피스들, 모양은 거의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들인 신발들! 지난 3년간 한 번도 입거나 몸에 걸치지 않은 것들은 모두 기부 처리하게 되었다.

    자주 이용하는 기부처, 옷캔. 클릭시 사이트로 이동 / 연말정산 기부금 가격을 가장 잘 쳐준다.

    옷캔 공식 홈페이지

    옷캔은 의류 재활용을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고, 의류 재순환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NGO단체입니다.

    otcan.org

    [넷플릭스. 쐐기를 박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번 더 내가 가진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보지는 않았다. 다만 한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의 이야기를 해 준 것이 인상 깊었다. 어머니는 추억을 간직하려 물품을 모아두었지만 결국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하고 죽었다.

    netflix 2016년.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항상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죽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오늘의 시공간을 의미 없는 영수증과 아무렇게나 모아둔 학습지들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십 년간 책장 한구석에 있었던 미국 인턴쉽 대학교의 도서관 출입증, 먼지 쌓인 인도 여행 책자, 한 장 쓰고 만 가계부를 모두 처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물론 나는 여전히 물건도 많고 미니멀리스트도 아니지만- 물건을 비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결한 라이프 스타일 추구에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버리고 비움으로서 현재 소유한 것들이 더 가치 있어지고, 그에 합당한 가치가 빛을 발한다.


    [다짐]

    one-in-one-out을 시행해 보려고 한다. 우선은 화장품부터. 매번 사들이지만 결국 손이 가는 것들만 이용하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하나를 사고 싶으면 하나를 다 쓰고 새로 사겠다고 다짐한다. 버려보니 산다는 것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오늘, 비움의 감정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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