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생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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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생산적 행위의 생산성에 관하여[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9. 3. 23:04
생산적이지 못한 행위들과 그로인해 낭비된 시간들이 못견디게 아까울 때가 있었다 걸을때는 생각을 하거나 무언가 중얼중얼 외워야했고 노래를 들을때는 팝송 가사라도 알아야했으며 청소를 하면서 동시에 티비를 봐야했고 누워있으면서도 뭐라도 읽어야했던 때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고 그누구보다 그 시간을 잘쓰고 싶었다 늘 조급했고 불안했고 쫓기고 아낀 시간 아까웠던 순간들로부터 얻은 것들도 많았으나 빈시간이 가져다주는 평화와 공백 나태의 아름다움은 알지못하였다 쉼은 곧 무의미요 휴식과 명상은 낙오자의 핑계로 들렸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텅빈거리를 의미없이 정처없이 걸으며 만보를 채워야한다는 목적이나 떠오르는 생각을 놓칠까봐 메모장을 들고나가지 않고서도 그순간이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있다고 문득 느끼게 되었다 인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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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천재와 싸워 이기는법 ㅡ 이현세[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8. 30. 08:54
아래글은 이현세님이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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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8. 10. 20:23
물건을 버린다 포장지는 내용물만 빼내고 전부 버리고 안쓸것같으면 아니면 그냥. 사진을 지운다 굳이 나중에 볼것같지않은 사진들 비슷한 여러장의 사진들 풍경만 있는데 구글에 더 잘찍은 사진이 있을것같은 지우고싶은 사진들을 쉽게 지운다 내다버리고 지우고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물건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를 덕지덕지 붙이는건 다 버려도 질척거리며 따라오는 생각은 버려지지가 않아서 끝까지 따라온다 아무리 잘 긁어서 내다버려도 어디선가 부스러기가 튀어나온다 다시 내다버려도 불쑥 장소도 버린다 버리는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여기까지 버려야 진짜 다 버리는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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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검정셔츠[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11. 11:14
이선생님은 자연갈색의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수업을 했다.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으나 날씬한 체형에 허리 라인이 잡힌 옷을 자주 입었으므로, 또 교실 앞쪽에는 강단이 있었으므로 선생님은 꽤 크게 보였다. 앉아서 올려다 보아서일까 아니면 그가 이미 수능이라는 벽을 넘어 돈을 버는 사회인이라는 경제적 차이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실제로 그의 키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경은 이선생님이 검은 셔츠를 입고 온 날에는 하루 종일 설렌다고 말했다. 그 애의 교복 안에는 누군가를 의도 없이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이선생님은 살짝 광택이 나는 검은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항상 앞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채로 수업에 임하였는데, 그것은 경의 취향을 저격했다. -저격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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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장이 너덜너덜해요[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7. 09:22
재미 삼아 친구들과 본 운세에서 물 가까이에 살면 좋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연히 한강 근처에 있는 집을 얻게 되었으므로 '여기가 내 집이 될 운명이었나?' 궁금해하며 행복해했다. 이곳에 살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물 근처에 살아서 알게 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물 근처에 살면 좋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에서 맺어진 인연이 아닐까. 내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갈수록 상대도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물이 너무 가까운 탓일까. 이 집은 비가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처음 이사할 때부터 베란다 천장 부근이 콘크리트가 노출이 되어 있기에 오래된 집이라서 그렇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비가 정말 많이 오던 어느 날, 천장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밑에 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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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강 한자락. 나의 서식지.[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5. 16:26
나의 서식지 옆으로는 한강이 흐릅니다. 시간 맞춰 달려 나가는 지하철들이 지나고 저 멀리 반짝이는 강변북로가 창 한 자락에 담겨있습니다. 집 앞 도로는 작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새벽부터 내곤 합니다. 시위하는 음악, 에어컨 실외기 소리, 버스 첫 차 소리를 막지 못하는 연약한 샤시가 오늘도 바람에 덜컹입니다. 자취남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자주 봅니다. 이 집이 아직 내것 같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 집이 내 것같이 느껴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영상에는 온갖 화려한 것들로 꾸민 나만의 집 나만의 방들이 등장합니다. 특색 없는 나의 방을 둘러보고는 이내 내 취향은 도대체 어디에 반영이 되어있는지 고민해봅니다. 열심히 치우지만 문이 딱 들어맞지 않는 문틀이라든지, 바닥이 쉽게 들리는 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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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랑을 공부할 수 있나요? -1-[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5. 12:05
시작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호감을 사고 호감을 가지고. 상대를 알아가고, 묻고 대답하면서 더 깊이 있게 다가갔다. 그렇지만 관계의 지속은 어려운 것이라서, 실패했을때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랑을 공부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 혹은 사랑도 답안이 있고 채점해서 오답노트 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이제라도, 늦었지만 사랑을 공부할 수 있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오답노트도 쓰고 예습 복습 철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강의들을 보려고 한다. 1.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랑이 오래 가려면 출처: 유튜브 세바시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사랑을 발전하고 유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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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4. 16:09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흔하디 흔한 플러팅 멘트 아니던가? 왜 이 말이 교장선생님 입에서 흘러나오는지 멍할 따름이다. 코시국 처음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교장선생님께서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계셨기에 -물론 나도 그렇다- 서로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분의 목소리만큼은 귀에 익어 어디서 들어본 것인지 생각해내려 했으나 실패한 참이었다. 게다가 교장선생님은 급식실에서 나를 완전히 다른사람과 착각하지 않았는가. "황은 어디다 두고 혼자 와서 밥을 먹어?" 나를 행정실 직원으로 착각한 탓이었다. 물론 기분은 아주 좋았다. 나와 착각한 그 직원은 20대 중반의 꽃다운 아가씨였으므로.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20대로 착각받을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더 기뻤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