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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가오니 책을 읽겠어요
    [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6. 23. 22:17

    긴 가뭄으로 힘들어하던 땅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세차게. 창틀을 때리며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빨래는 어제 돌릴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간이 없는 빗줄기가 삶을 닮은 것 같다. 장마와 가뭄 사이에서. 메마름과 축축함 사이에서 따뜻하고 보드라움을 바라며.

     

     

    자꾸 생각이 뒤엉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식된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라고 다독여봐도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봐서는 다시는 에우리디케를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뒤를 돌아본 것처럼.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을 찾는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빌려두고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여기저기 원망스럽게 널려있다. 쉬어가는 동안 충분히 읽으리라 다짐했건만.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후배로부터 알록달록한 북커버까지 선물 받아놓고 읽은 책은 정작 지난 한 달간 두 권. 비가 온다는 핑계로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한 권도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창틀에 걸터앉아 지걱지걱 물이 배어 나오는 슬리퍼 옆에 고장 난 자동우산을 걸쳐두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에 속이 쓰릴걸 알면서도, 완벽한 디카페인이라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장 작은 사이즈의 라떼를 홀짝인다.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또르르 굴러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보며 떠올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원하는 책이 있으면 한 권씩 사모으는 재미를 알았다. 언제든 책에는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있었고, 서점 아주머니는 참 친절했고,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이 정말 많았다.

     

    한 권 한 권마다 새로운 세상이 들어있었다.

    이마에 흉터난 고아가 마법세계 유명인이 되는 세계도 있었고, 이미 지나간 역사 속의 세상도, 소설 속의 세상도 있었다. 세상을 설명하는 책들도 있었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책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책들과 함께 내 세상을 구축해 나갔다.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추체험하고 몰두하면서 알아가는 것들이 재미있었다. 꼭 머릿속에 남는 지식이 있지 않아도 좋았다. 내가 잠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했다.

     

     

    비가 자주 내릴 것 같다. 비가 오니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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