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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일기] 민주주의와 독재 그 사이
    [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4. 8. 12:15

    줄리어스 시저

    **이 글은 인디스쿨의 그림같이 선생님으로부터 주제에 대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3월은 기합이 들어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긴장하고 서로의 선을 살핀다. 특히나 6학년은 지난 5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휴화산을 활화산으로 만들지 않을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상태이다. 눈빛이 오간다. 소리 없는 메아리가 울린다. '여기까진 괜찮은가요?' '안돼. 돌아가.'

     

    6학년 1학기는 정치와 삼권분립에 대해 처음 배우는 시기이다. 이전까지 아이들은 다수결이 절대 선이자 진리인 줄 알며, 가위바위보가 최선의 문제 해결 방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처럼 군다. 그러다 삼권분립에 대해 배우고 난 뒤에 의문의 물음표를 띄운다. 우리 교실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전부 우리 담임이잖아? 독재 아닌가? 하고.

     

    그렇다. 나는 독재정치의 선봉이다. 규칙을 내 맘대로 만든다. 수업시간에 방해되는 행위는 벌을 준다. 헛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다. 가장 힘셀 것 같은 아이들을 체육시간에 눌러준다. 그들보다 빠르게 달리고, 그들보다 멀리 던지고, 그들과의 대결로 신체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해 준다. 본능에 새기도록 한다. '독재자는 나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나다.' 이상하면서 동시에 당연하게도 이런 모습에 아이들은 따라준다.

     

    한 번은 이에 대응하는 학생을 마주친 적이 있다. 악력기를 가져와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수시로 손 힘을 키우고, 아버지를 졸라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팔씨름 학원을 -사교육 시장의 대단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팔씨름 학원이라니- 다니며 나를 이기고자 하였으나 아이의 연약한 근육은 결국 나를 넘지 못했다. 아이가 남학생 중에 대장격이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대장을 이긴 독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독재가 편해 보이지만, 스스로 돌이켜보면 자유와 방종이 훨씬 쉬웠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며, 치킨 사달라는 말에 웃으며 같이 유들유들하게 구는 편이 나도 편하다. 그러나 이런 자유 안에서는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오히려 '네 말 따윈  듣지 않아. 난 내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권력을 휘두른다.'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했을 때 원칙을 종용하고, 행동을 강요하였으므로 힘이 훨씬 많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떳떳해야 했으므로 늦을 수 없었고 허튼 유머감각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가 되기를 스스로 자처한 데는 이유가 있다. 

     

    원칙 때문이다. 선생님이 대장이 되지 못하면 누군가가 대장질을 한다. 아직 아이들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게 내가 되어준다. 카리스마와 기준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명확히 알게 해 준다. 멀리서 보면 민주주의인 척한다.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게 하고, 학급 규칙을 적용시키는 것도 스스로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내가 의도한 방향이 들어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음을 천천히 설명한다. 한 번만. 두 번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스스로 주변에 물어보거나, 이유가 있겠거니 한다.

     

    오늘도 아이들이 바른 방향으로 한 발짝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독재자가 된다. 잘 자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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