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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천장이 너덜너덜해요
    [끄적끄적 생각노트] 2022. 7. 7. 09:22

     

     재미 삼아 친구들과 본 운세에서 물 가까이에 살면 좋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연히 한강 근처에 있는 집을 얻게 되었으므로 '여기가 내 집이 될 운명이었나?' 궁금해하며 행복해했다. 이곳에 살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물 근처에 살아서 알게 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물 근처에 살면 좋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에서 맺어진 인연이 아닐까. 내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갈수록 상대도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물이 너무 가까운 탓일까.

     

    이 집은 비가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처음 이사할 때부터 베란다 천장 부근이 콘크리트가 노출이 되어 있기에 오래된 집이라서 그렇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비가 정말 많이 오던 어느 날, 천장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밑에 고여있던 물웅덩이. 아뿔싸! 내가 물 근처에 살게 된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던가? 그 후에도 비가 들이닥치는 날이면 천장의 흰색 칠이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았다.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너덜너덜한 종잇장처럼 천장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집 안에서도 물과의 전쟁이었다. 옷방에는 제습기를 틀어야 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 제습기능을 켜지 않으면 축축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용케 곰팡이가 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50년 된 콘크리트 건축물에서 단단한 외벽 외에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 너덜너덜한 천장은 천장 탓이 아니라 내가 천장에 과도한 기대를 한 탓이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비가 새도 당황스럽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너덜너덜한 천장에도 너덜너덜한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때, 나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세상에 너저분한 것들을 이제는 꽤 많이 보게 되어서 말 못 하는 천장의 직무유기 정도야 조용히 눈 감아줄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50년 된 집에서 살만해요?"라고 물어보면 "천장에서 비가 새요"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비가 새긴 하는데 싫진 않아요."라고 말할 것 같다. 나는 비가 새는 천장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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