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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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래의 여자_아베 코보_세계문학전집55[읽은 책들] 2021. 11. 3. 15:15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책 속의 남자는 희귀 곤충을 채집하여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누군가에게 채집되어버리고 만다. 계속해서 부서져 내리는 모래 구덩이 속에서 초반부의 남자는 지속적으로 투쟁한다. 벌레처럼 발버둥 친다. 점차 반항은 미약해지고 납득의 탈을 쓴 합리화에 스스로를 가둔다. 결국 자신이 쌓아 올린 무의식, 모래로 투영되는 덫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버리고 만다. 사막에는 알수없는 힘이 있다. 와카치나가 떠오른다. 샌드 보딩을 마치고 빨래와 샤워를 몇 번이나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귓속과 온갖 주머니, 핸드폰에서 나오는 모래는 그칠 줄을 몰랐다. 이전에는 없었을 아스팔트 도로의 끝에 온통 모래들 뿐이었다.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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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계문학전집111_헤르만 헤세_크눌프[읽은 책들] 2021. 11. 2. 13:50
계획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야. 사실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거든.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지만. 사실을 머릿속에 욱여넣기 위해 읽기라는 도구를 활용하다가 읽기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읽기는 오랜만이어서 반갑고 좋았다. 오랜만에 다시 읽을 책으로 크눌프를 집어 들게 된 것은 크눌프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움을 지닌 인물이어서였다. 그래서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제일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의 조명탄들이 어둠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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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둑맞은 가난_박완서(민음사, 1983)[읽은 책들] 2021. 5. 26. 16:29
[들어가며] 처음 이 책을 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문학 담당 선생님이 맛깔나게 이 책의 한 장면을 소개해 주었다. 가난마저 도둑맞아버리면 이이에게 남아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짧지만 강렬한 찝찝함과 기분나쁨에 몸서리쳤던 것이 기억난다. 인간은 이렇게나 추악해서 가난마저 사버리는구나. 박완서 작가는 도둑맞은 가난보다 자전거도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더욱 유명하지만 나는 수작은 바로 이 도둑맞은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발췌]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수명이 다 돼 침침한 20촉짜리 형광등 밑에서 그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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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크눌프_(헤르만헤세)_민음사[읽은 책들] 2020. 11. 10. 02:01
민음사_세계문학전집 111 크눌프_헤르만헤세_이노은 옮김 처음 헤르만헤세의 책을 접했을 때는 초등학교 6학년, 학급 문고에 있던 데미안을 읽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책은 2010 서울교육대학교 수시전형 논술 문제에 등장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크눌프.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봄날 잔디밭에 누워서, 날씨 끝내주는 곳으로 여행가서, 나른한 오후에 읽고 싶은 책. 69p. 그래서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제일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의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 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 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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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달과 6펜스_(서머싯 몸)_민음사[읽은 책들] 2020. 11. 10. 01:50
민음사_세계문학전집 38달과 6펜스_서머싯 몸_송무 옮김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복합적인 나쁜놈이다. 자신의 미적 배설 욕구를 위해 주변인을 모두 비극으로 몰고, 기분 나쁜 성격과 말투로 독자의 기분까지 바닥으로 끌어내린다.인간에 대한 깊은 염증을 느꼈다고 해서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을 그토록 괴롭혀도 되는 걸까 싶다. 아내와 자식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나고, 자기를 구해준 남자에게서는 아내를 빼앗으며, 늙어서는 열일곱 살짜리 원주민 여자와 살림을 차린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예술을 위한 헌정이라고 한다. (주의) 이 책을 끝까지 읽으려면 필자가 극단적으로 여성을 멍청하고 이기적이며 속물적인 캐릭터로만 등장시킨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예를 들면, 이런 류의 묘사나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여자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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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달콤 쌉싸름한 초콜릿_(라우라 에스키벨)_민음사[읽은 책들] 2020. 11. 10. 01:44
세계문학전집 108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옮김 책의 배경은 나를 멕시코 추억에 젖어들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이집트에서 읽게 되었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겠다며 피라미드도, 스핑크스도 보지 않고 다합에 도착한 나는 바보같이 첫날 밤 발을 헛디뎌 왼쪽 둘째 발가락을 다섯 바늘이나 꿰매고 말았다. 다이빙은커녕 40도의 뜨거운 열기에 잘 걷지도 못했다. 쩔뚝거리며 집 앞마당에 나가 읽은 책 중 하나가 바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여러 종류의 요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착각이 든다. 다시 멕시코로 날아가 멕시코 음식을 먹으면서 이 책을 읽고 싶다. 음식과 사랑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멕시코로 여행을 갈 예정이거나 멕시코를 여행 중이라면 더..